하늘 위를 나는 항공기가 화산 폭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화산 폭발이 발생하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들의 항공편까지 결항되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특히 2010년 아이슬란드 에이야퍄틀라요퀴틀 화산(Eyjafjallajökull)의 폭발은 유럽 전역의 항공망을 마비시키며 전 세계인들에게 화산재의 위험성을 각인시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단순히 연기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화산재는, 실제로는 항공기에게 매우 치명적인 위협이 됩니다.
그렇다면 화산재는 왜 비행기의 운항을 어렵게 만들며, 어떤 과정을 통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걸까요?
화산재란 무엇인가요?
화산이 폭발할 때 뿜어져 나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산재(volcanic ash)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무가 타고 남은 부드러운 재와는 다릅니다.
화산재는 암석, 광물, 유리질 입자들이 잘게 부서진 미세한 고체 물질입니다.
이 입자들은 지름이 2mm 이하로 매우 작고 가볍기 때문에 공중에 오래 떠다닐 수 있으며, 강한 바람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까지 퍼질 수 있습니다.
또한 화산재는 높은 온도의 마그마가 폭발과 함께 갑자기 냉각되며 생기는 경우가 많아, 그 구성에는 규산염 유리질(silicate glass)이나 날카로운 광물 조각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먼지가 아니라, 날카롭고 거칠며 심지어는 산성 성분을 포함할 수 있는 연마제 같은 물질인 셈입니다.
항공기와 화산재가 만나면 생기는 문제
화산재는 비행기와 만날 경우 다양한 기계적, 전자적, 시각적 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2-1. 제트 엔진 정지 위험
항공기의 제트 엔진은 수천 도의 고온을 내뿜으며 공기와 연료를 압축·연소시키는 구조인데,
화산재가 엔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 내부에서 녹았다가 다시 응고되며 터빈 날개에 들러붙고 막히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엔진 꺼짐(engine flameout) 현상으로 이어져, 비행 중 항공기가 추락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2-2. 조종석 앞 유리 손상
화산재는 유리도 연마할 만큼 날카롭고 마모성이 강하기 때문에, 조종석 유리에 닿을 경우 앞이 보이지 않게 뿌옇게 만들어 시야를 방해합니다.
이로 인해 안전한 착륙이나 항로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2-3. 항공기 외부 마모
날개, 동체, 센서, 랜딩기어 등 기체 외부에 있는 모든 부품은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공기와 마찰하게 됩니다.
여기에 화산재까지 포함되면, 마치 고속 샌드블라스트를 맞는 것처럼 빠르게 마모와 손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2-4. 항공기의 전자장비 오작동
일부 화산재는 정전기 현상이나 미세한 전도성 입자를 포함하고 있어, 항공기의 항법 시스템이나 센서 등에 전기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비행에 필수적인 자동조종 장비나 고도계, 속도계 등의 오작동은 심각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와 대처 방법
화산재로 인한 항공 사고나 운항 중단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1982년 인도네시아 갈룽궁 화산 폭발입니다.
3-1. British Airways 9편 사건
1982년, 런던발 오클랜드행 British Airways 9편 여객기가 인도네시아 상공을 비행 중 화산재 구름을 통과하며
4개의 엔진이 모두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기장은 하강하며 수동으로 엔진 재시동을 시도했고, 다행히 일정 고도 이하로 내려갔을 때 엔진이 다시 작동하며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전 세계 항공 산업에 화산재의 위험성을 일깨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3-2. 2010 아이슬란드 화산 사태
2010년에는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퍄틀라요퀴틀 화산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상공으로 퍼졌고,
당시 유럽 전역의 항공기 10만 편 이상이 결항되고 수천만 명의 여행객이 발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경제적 피해는 약 3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는 화산재로 인한 가장 큰 항공 운항 마비 사례로 기록됩니다.
3-3. 현재의 대응 체계
이러한 사례 이후, 전 세계 항공 당국은 화산재 감시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VAAC(Volcanic Ash Advisory Center)가 9곳 이상 운영되고 있으며, 위성과 항공기 레이더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화산재 구름을 감시하고 항공사에 경고를 발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종사들은 화산재 경로를 우회하는 비행 계획을 세우고, 기체 점검 시 화산재 노출 여부를 확인하도록 교육받고 있습니다.
화산재는 단순한 대기오염 물질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항공기에게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정교한 기계장치로 이뤄진 항공기는 작은 입자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특히 고온의 제트 엔진과 화산재의 조합은 심각한 고장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위성 기술과 예측 시스템이 발달하여 어느 정도 사전 대비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화산재는 인류가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의 변수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자유롭게 오가는 지금의 일상도, 사실은 자연의 질서와 그에 대한 이해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점을 되새겨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