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인공위성은 국가기관이나 우주 전문 기관만이 운용하던 귀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민간 기업과 신흥 우주 강국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인공위성은 그야말로 '대중화'되었고, 그 결과 지구 궤도는 점점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교통 신호 없는 도로에 차량이 무질서하게 몰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급증하는 인공위성 수와 교통량
2020년 이후 인공위성 발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민간 우주기업인 스페이스X(SpaceX)는 자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Starlink)'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까지 6,000기 이상의 저궤도 위성을 발사했으며, 앞으로 수만 기를 추가로 쏘아올릴 계획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 원웹(OneWeb), 중국의 궤도 네트워크 기업들도 대규모 위성망 구축에 나서면서, 지구 저궤도(LEO, Low Earth Orbit)는 말 그대로 '인공위성 러시' 상태입니다. 국제천문연맹에 따르면 현재 운용 중인 인공위성은 9,000기 이상이며, 계획 중인 위성까지 합치면 그 수는 향후 수십만 기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처럼 많은 위성이 좁은 궤도 공간을 나눠 쓰게 되면, 서로의 궤도가 겹치거나 가까워지면서 충돌 위험성이 급증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현실의 문제입니다. 2021년에는 스타링크 위성이 중국의 우주정거장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사고가 발생해 중국 정부가 공식 항의한 바 있으며, 실제 위성 간 충돌 사고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궤도도 정리가 필요하다: 우주 교통 관리의 필요성
현재까지 우주에는 '신호등'이나 '차선' 같은 교통 정리 체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국이 발사하는 위성은 대체로 자국의 우주청 또는 민간기업의 판단에 따라 운용되며, 충돌을 피하기 위한 정보 공유는 일부 국제기구와 양자 협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우주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자칫 위성 충돌이나 정보 혼선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 미국 우주사령부(US Space Command) 등은 위성 궤도와 궤적 정보를 추적하고 있으며, 충돌 가능성이 있는 경우 궤도 수정을 유도하거나 회피 조치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시스템이 아직 표준화되어 있지 않으며, 국제적인 법적 강제력도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위성 운영 주체가 이를 무시하거나, 데이터 공유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첨단 기술이 있더라도 교통 정리는 불가능해집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러한 상황을 '우주 교통체증(Space Traffic Jam)'이라고 부르며, 국제적 수준의 우주교통관리시스템(STM, Space Traffic Management)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엔 우주평화이용위원회(COPUOS)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이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상업·군사적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속도는 더딘 상황입니다.
대책은 있을까? 규범과 기술의 공존
우주에서도 교통질서를 만들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정책과 규범, 둘째는 기술적 대응입니다.
1) 정책적 해법
국제 공조 체계 강화: UN과 ITU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위성 운용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충돌 가능성을 평가해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발사 허가제 및 우선권 부여: 궤도 사용에 일정한 '우선순위'를 두고, 중복 발사를 제한하거나 충돌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조정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합니다.
위성등록 의무 강화: 현재 일부 위성은 제대로 등록되지 않거나, 운용 종료 후에도 궤도상에 남아 있어 궤도 혼잡을 유발합니다. 등록 시스템을 투명하게 운영해야 합니다.
2) 기술적 대응
AI 기반 궤도 예측 시스템: 인공지능을 활용해 위성의 궤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자기회피 능력을 갖춘 위성 설계: 자체적으로 궤도 수정을 통해 위험을 회피하는 스마트 위성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분산형 위성 운영: 수백 개의 위성을 네트워크처럼 연결해 분산 제어함으로써, 전체 궤도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도 점차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통체증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술과 규범이 병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공유와 협력'이라는 기본 정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지구 궤도는 단순히 우주의 빈 공간이 아닙니다. 수많은 인공위성들이 통신, 내비게이션, 기상관측, 군사 감시 등 현대 문명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무분별한 위성 발사가 지속된다면, 그 궤도조차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늘길에도 질서와 책임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미래의 우주를 공유하고 이용할 다음 세대를 위해, '위성 교통 정리'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